25p. <바빌론의 탑>
꼭대기에 올라갈 때마다 그 수레는 다시 제일 아래층까지 내려와야 해. 난 도저히 그럴 수 없을 거야.
27p. <바빌론의 탑>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는 밤의 정체를 깨달았던 것이다. 밤이란 하늘을 향해 드리우는 대지의 그림자였다.
29-30p. <바빌론의 탑>
탑을 오르던 어느 날, 광부들은 경사로 가장자리에서 보면 위를 올려다보든 아래를 내려다보든 탑이 똑같이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탑의 원주는 바늘 끝처럼 점점 가늘어지다가 아래쪽의 평원에 도달하기도 전에 사라져버렸다. 마찬가지로 위를 바라보아도 아직 탑의 정상은 보이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탑 중간의 일부뿐이었다. 올려다보거나 내려다보는 행위는 이제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연속성이 주는 안심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더 이상 지상의 일부가 아니었다. 탑은 대지에도 하늘에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허공에 든 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50p. <바빌론의 탑>
어떤 이유에선가 하늘의 천장은 대지 아래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 두 장소는 머릴 떨어져 있으면서도 마치 서로 맞닿아 있는 듯했다.
51p. <바빌론의 탑>
이제는 왜 야훼가 탑을 무너뜨리지 않았는지, 정해진 경계 너머로 손을 뻗치고 싶어하는 인간들에게 왜 벌을 내리지 않았는지 뚜렷이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오랫동안 여행을 해도 인간은 결국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51p. <바빌론의 탑>
몇십 세기에 걸쳐 역사한다고 해도 인간은 천지창조에 관해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지식 이상의 것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런 노력을 통해, 인간은 야훼의 업적에 깃든 상상을 초월한 예술성을 일별하고, 이 세계가 얼마나 절묘하게 건설되었는지 깨달을 수 있다. 이 세계를 통해 야훼의 업적은 밝혀지고, 그와 동시에 숨겨지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인간은 자신의 위치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65p. <이해>
지능에는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정점이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호르몬의 추가 주입에 의해 추가 증대할 수 있는 것일까?
79p. <이해>
게슈탈트들이 나를 부르고 있다.
79p. <이해>
사고력이 발달하자 내 몸을 제어하는 능력도 함께 발달한다. 진화를 거치면서 인류가 지능을 발달시키는 대신 육체적인 능력을 희생했다는 생각은 오해이다. 육체를 행사하는 것은 정신적 활동이다. 힘 자체는 강해지진 않았지만, 내 육체를 다루는 조정력은 이제 평균을 훨씬 뛰어넘은 상태이며 양손잡이가 되어가고 있을 정도이다. 게다가 정신 집중 능력이 뛰어난 덕분에 바이오피드백 테크닉을 극히 효과적으로 쓸 수 있다. 약간의 연습만으로도 나는 맥박수나 혈압을 자유자재로 낮추거나 올릴 수 있게 되었다.
89p. <이해>
네 번째 앰플을 쓰면 어떨까? 머리에서 이런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다. 현재 내가 도달한 정상에서 좌절을 경험할 때마다, 나는 더 높은 곳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곱씹는다.
90p. <이해>
나의 뇌는 불타오르고 있고, 등골 전체가 도화선처럼 타오른다. 당장이라도 뇌졸중을 일으킬 것 같다. 눈이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으며 아무런 감각도 느낄 수 없다.
환각을 본다. 초자연적일 정도로 선명하고 뚜렷한 환각은 망상의 산물이겠지만, 형언할 수 없는 공포가 내 주위를 에워싼다. 물리적인 폭력이 아닌 정신적인 훼손의 이미지들. 정신적 고뇌와 오르가슴. 전율과 히스테리컬한 웃음.
91p. <이해>
말이 있으라Fiat Logos. 나는 내가 과거에 상상했던 그 어떤 것보다 더 풍부한 표현력을 가진 언어를 통해 나의 마음을 안다. 말을 함으로써 혼돈에서 질서를 창조하는 신처럼, 나는 이 언어를 써서 나를 새롭게 바꾼다. 이것은 메타 자기 기술이며 자기 편집이다. 이 언어는 사고를 기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작용을 모든 레벨에서 기술하고 수정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의 서술을 수정하면 문법 전체의 조정이 야기되는 언어가 있다는 사실을 괴델이 알았다면 뭐라고 했을까.
111p. <이해>
그가 이 말을 하자 내가 재구성한 그의 모델에 존재하는 틈새 하나가 채워지고 넘친다. 그것이 암시하는 바는 내가 그에 관해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물들인다. 그가 의미하는 것은 '말'이다. 입 밖으로 내면 듣는 사람의 마음을 파괴하게 되는 문장. 레이놀즈는 이 신화가 사실이며, 모든 마음에는 본래 그런 방아쇠가 내장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개인에게는, 단지 들려주기만 해도 그를 백치로, 광인으로, 긴장병 환자로 몰아넣을 수 있는 문장이 하나씩 있다고. 그리고 그는 나의 문장도 알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128p. <영으로 나누면>
칼은 르네의 얼굴에 매료당했다. 대단히 평이한데다가 언제나 우울한 표정인 듯 했지만, 파티에서 그는 그녀가 미소 짓는 것을 두 번, 찡그리는 것을 한 번 보았다. 그때마다 르네의 이목구비 전체가 마치 다른 표정은 아예 모른다는 듯 완전히 돌변하는 것을 보고 칼은 깜짝 놀랐다. 평소에 자주 미소 짓거나 자주 찌푸리는 얼굴이라면 설령 주름이 없다고 해도 금세 알아볼 수 있는 법이다. 저토록 깊이 있는 표정을 지을 수 있으면서 왜 평소에는 그것을 전혀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일까.
130p. <영으로 나누면>
르네라면 '궁금하다'라는 말보다 훨씬 더 강한 표현을 썼을 것이다.
134p. <영으로 나누면>
형식 체계로서의 수론은 모순이야.
137p. <영으로 나누면>
그리고 그녀는 생과 사가 동일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37p. <영으로 나누면>
그러나 그것은 아름답고, 장엄하며, 르네가 지금까지 본 정리 중에서도 가장 정묘한 것이었다.
140p. <영으로 나누면>
1과 2가 등가라고 계측하는 것과 그것을 직관하는 것은 전혀 달라. 난 더 이상 마음속에 뚜렷한 양量의 개념을 유지할 수가 없어. 모든 게 똑같이 느껴지거든.
141p. <영으로 나누면>
힐베르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만약 수학적 사고에 결함이 있다면 우리는 진실과 확신을 도대체 어디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142p. <영으로 나누면>
지금껏 르네는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수학은 우주에서 그 의미를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우주에 대해 모종의 의미를 부여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리적인 존재에 대소나 유사함의 구분은 없다. 그것들은 단지 그곳에 있고 존재할 뿐이다. 수학은 이런 것들로부터 완전히 독립해 있지만 실질적으로 이런 존재들에 대해 범주나 관계를 제공하며 기호론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수학이 표현하는 것은 고유한 성질이 아니라 가능한 하나의 해석인 것이다.
143p. <영으로 나누면>
그러나 이것은 더 이상 사실이 아니었다. 수학은 일단 물리적 존재들로부터 유리된 뒤에는 모순을 내포하게 되고, 형식적 이론은 모순 그 자체였다. 수학은 경험적인 것 이상의 그 어떤 것도 아니었고 더 이상 그녀의 흥미를 끌지 않았다.
143p. <영으로 나누면>
그에겐 도대체 어떤 장점이 있기에 마를린과 그토록 친해질 수 있었는지 궁금해했다는 사실을 칼은 알고 있었다. 대답은 가단했다. 그것은 동정과 감정이입의 차이였다.
160p. <당신 인생의 이야기>
눈꺼풀이 없는 일곱 개의 눈이 헵타포드의 몸통 꼭대기를 둘러싸고 있었다. 헵타포드는 방금 들어온 입구를 향해 돌아가더니 짧게 풋 풋 소리를 냈고, 다른 헵타포드를 대동하고 다시 방 중앙으로 되돌아왔다. 그러면서도 한 번도 몸의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 기괴하면서도 논리적이었다. 모든 방향으로 눈이 있으므로, 헵타포드에게는 어느 방향도 '전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174p. <당신 인생의 이야기>
"몸이 방사상 대칭이기 때문에 생겨난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몸에 '전방'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글자 역시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겠어요. 고도로 근사한 방식이로군."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함께 일하는 동료가 '근사하다'라는 말을 '고도로'라는 말로 수식하는 사람이었다니.
175p. <당신 인생의 이야기>
익숙한 쪽은 멀리 떨어져 있는 데 비해, 낯선 쪽은 지척에 있었다.
177p. <당신 인생의 이야기>
그때 내 머릿속에 떠오르게 될 생각. 너는 명백하게, 기가 막힐 정도로 나와는 다르다는 사실. 이 생각은 네가 나의 복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내게 또다시 일깨워줄 거야. 너는 매일처럼 내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소중한 존재이지만, 나 혼자 만들어낼 수 있었던 존재는 결코 아니야.
183p. <당신 인생의 이야기>
네 졸업식을 기억해. 넬슨과 네 아버지와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그 젊은 여자가 모두 와 있는 탓에 조금 산만할 테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 주말 내내 너는 나를 네 학교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쉴새 없이 끌어안지. 너의 모습이 너무 놀라운 탓에 나는 말이 제대로 안 나오는 지경이야. 나보다 키도 크고, 가슴이 아릴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가 된 네가, 분수식 식수대에서 물을 마실 수 있도록 들어올려주곤 했던 어린 소녀, 내 옷장에서 꺼낸 드레스와 모자와 네 장의 스카프를 몸에 두르고 내 침실에서 구르듯이 달려나오곤 했던 어린 소녀와 같은 아이라니.
193p. <당신 인생의 이야기>
우리 관계가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사실을 내가 매일 자각하게 되는 것은 네가 처음 걷기 연습을 하면서부터야. 너는 쉬지 않고 어딘가로 달려나가겠지. 네가 문지방에 부딪치거나 무릎이 까질 때마다 나는 너의 아픔을 내 것처럼 느끼게 돼. 마치 말을 안 듣고 멋대로 행동하는 팔이나 다리가 하나 더 생긴 듯한 느낌이지. 내 몸의 연장이니까 지각 신경이 느끼는 아픔은 고스란히 나한테 전달되지만, 운동신경은 전혀 내 명령에 따르지 않는 꼴이야. 정말 불공평해. 나의 본을 떠 빚은 움직이는 부두 인형을 낳은 기분이랄까. 계약서에 서명할 땐 이런 조항을 읽은 기억이 없어. 이것도 계약의 일부였단 말이야?
193p. <당신 인생의 이야기>
반대로 네가 웃는 것을 볼 때도 있겠지. 이를테면 쇠그물 울타리 사이로 손을 집어넣고 이웃집 강아지와 놀 때. 어찌나 웃어대는지 너는 급기야 딸꾹질을 하기 시작하지. 강아지가 옆집 안으로 들어가면 너의 웃음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너는 그제야 숨을 제대로 쉬기 시작해. 그러다 강아지가 다시 밖으로 나와서 네 손가락을 핥고, 그럼 너는 또 꽥 소리를 지르고 웃기 시작할 거야. 그 소리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소리이지. 내가 분수나 샘이라도 된 듯한 기분으로 만들어주는 소리란다.
202p. <당신 인생의 이야기>
글쓰기 실력이 향상되고 있다는 사실도 나를 들뜨게 만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쓰는 문장들은 점점 더 모양이 좋아지고 더 면밀해졌다. 너무 깊이 생각하지만 않으면 오히려 매끄럽게 쓸 수 있는 수준에까지 도달했다. 문자를 쓰기 전 신중하게 생각해 구도를 결정하는 대신, 즉각적으로 획을 긋는 것이 가능해졌던 것이다. 내가 처음에 긋는 선들은 내가 전달하려는 내용의 명쾌한 해석에 거의 언제나 들어맞는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203p. <당신 인생의 이야기>
더 흥미로운 점은 '헵타포드 B'가 내가 생각하는 방식을 바꿔놓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에게 지금까지 사고란 보통 마음속 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의미했다. 전문 용어를 쓰자면 나의 사고는 음운적으로 코드화되어 있었다. (...) 사고란 마음속으로 소리 없이 말하는 과정이었다.
203p. <당신 인생의 이야기>
언어적이지만 비음운적인 방식으로 사고한다는 개념은 언제나 나를 매료했다. (...) 나의 사고가 도형의 형태로 코드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낮에는 이따금 꿈을 꾸는 듯한 상태에 빠져, 나의 사고가 마음속 목소리로 표현되는 대신, 유리창에 서리가 끼듯이 생겨나는 어의문자로 대체되는 광경을 마음속 눈으로 보곤 했다.
203-204p. <당신 인생의 이야기>
내가 이 언어를 점점 더 유창하게 다룰 수 있게 되면서 이 의미표시 형태들은 완성된 형태로 나타났고, 나는 복잡한 개념들까지로 일거에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결과 나의 사고 과정이 예전보다 빨라지게 된 것은 아니었다. 앞을 향해 질주하는 대신, 나의 마음은 어의 문자들의 기반을 이루는 대칭성 위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부유하고 있었다. 어의문자들은 단순한 언어를 넘어선 무언가처럼 보였다. 거의 만다라에 가까웠다. 나도 모르게 명상 상태에 빠져 전제조건과 결론을 호환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해 숙고하고 있다는 사실을 퍼뜩 깨달을 때도 있었다. 각 명제들 사이의 관계에 고유한 방향성은 없었고, 특정 경로를 따라 움직이는 '사고의 맥락'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사유에 관여된 모든 요소의 힘은 동등했고, 모두가 동일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212p. <당신 인생의 이야기>
사실 한 가정 안에서 이 두 언술이 공존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쪽 모두 타당한 해석이다. 문맥이 이 문장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결정할 뿐이다.
213p. <당신 인생의 이야기>
인류와 햅타포드의 조상들이 맨 처음 자의식의 불꽃을 획득했을 때 양측은 모두 동일한 물질세계를 지각했다. 하지만 지각한 것에 대한 해석은 각자 달랐다. 세계관의 궁극적인 상이함은 이런 차이가 낳은 결과였다. 인류가 순차적인 의식 양태를 발달시킨 데 비해, 헵타포드는 동시적인 의식 양태를 발달시켰다. 우리는 사거들을 순서대로 경험하고, 원인과 결과로 그것들 사이의 관계를 지각한다. 헵타포드는 모든 사건을 한꺼번에 경험하고, 그 근원에 깔린 하나의 목적을 지각한다. 최소화, 최대화라는 목적을.
217p. <당신 인생의 이야기>
일단 울기 시작하면 너는 분노의 화신이 되고, 온몸으로 그 감정을 표현하지. 재미있는 건 네가 조용하게 있을 때는 몸에서 빛을 발산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야. 만약 누군가가 그런 상태의 너를 보고 초상화를 그린다면, 나는 그 그림에 후광을 포함시키라고 주장하겠지. 그렇지만 불쾌함을 느낄 때 너는 큰 소리를 발산하기 위해 만들어진 클랙슨이 되어버려. 그런 너를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화재경보기로 족할 거야.
217p. <당신 인생의 이야기>
네 인생의 이 단계에서 네게는 과거도 미래도 없어. 내가 너에게 젖을 먹이기 전까지 네 안에는 과거의 만족감에 관한 기억도, 미래의 충족에 대한 기대감도 존재하지 않아. 그러다 젖을 빨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역전되겠지. 너는 세상에 대해 아무런 불만도 느끼지 않게 돼. 네가 지각하는 유일한 순간은 오로지 지금뿐이야. 너는 현재 시제 속에서만 살아. 여러 의미에서 실로 부러운 상태라고 할 수 있지.
228p. <당신 인생의 이야기>
나는 손가락으로 너의 배를 훑으며 깜짝 놀랄 정도로 부드러운 살갗의 감촉에 감탄할 거야. 살이 이렇게 부드럽다면 설령 비단옷을 입힌다 해도 거친 삼베 천에 스친 것처럼 상처가 나지 않을까 싶을 정도야. 그러면 너는 꿈틀거리고, 몸을 비틀면서 양쪽 다리를 하나씩 내밀어. 나는 그것이 네가 내 뱃속에 있을 때 여러 번 했던 몸짓이라는 것을 깨닫겠지. 아, 바로 저런 식이었군.
나는 어머니와 자식 사이에 존재하는 유일무이한 유대 관계의 증거, 네가 내 뱃속에 있던 자식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고양감을 느껴. 설령 너의 모습을 직접 본 일이 없다고 해도, 나는 수많은 갓난아이들 사이에서도 단번에 너를 찾아낼 수 있을 거야. 저쪽은 아녜요. 아, 쟤도 아닙니다. 잠깐, 저기 저애예요. 예, 그 아이가 맞아요. 제 딸입니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서 얻어 꼭 써보고픈 표현과 단어
* 홉뜨다 : 눈알을 위로 굴리고 눈시울을 위로 치뜨다.
* 경구 : 진리나 삶에 대한 느낌이나 사상을 간결하고 날카롭게 표현한 말.
* 종래 : 일정한 시점을 기준으로 이전부터 지금까지에 이름. 또는 그런 동안.
* 조야하다 : (1)천하고 상스럽다. (2)물건 따위가 거칠고 막되다.
* 축차적 : 차례를 따라 하는 것.
* 부트스트랩 : 컴퓨터의 전원을 켜거나 리셋 키를 누르는 따위의 동작으로 시스템을 시동하는 일.
* 타래째 : 사리어 뭉쳐 놓은 실이나 노끈 따위의 뭉치. 또는 그런 모양으로 된 것.
* 도화선 : (1)폭약이 터지도록 불을 붙이는 심지. (2)사건이 일어나게 된 직접적인 원인.
* 외삽 : 보간의 두 값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두 점을 포함하는 범위의 바깥에 있는 값을 구하기 위하여 구간 밖에서 함수를 추정하는 일.
* 연후 : 그런 뒤.
* 양태 : 사물이 존재하는 모양이나 형편.
* 결락 : 있어야 할 부분이 빠져서 떨어져 나감.
* 길항 : 서로 버티어 대항함.
* 노정 : (1)적지까지의 거리. 또는 목적지까지 걸리는 시간. (2)거쳐 지나가는 길이나 과정. (3)겉으로 다 드러내어 보임.
* 연역 : 어떤 명제로부터 추론 규칙에 따라 결론을 이끌어 냄. 또는 그런 과정. 일반적인 사실이나 원리를 전제로 하여 개별적인 사실이나 보다 특수한 다른 원리를 이끌어 내는 추리를 이른다.
* 경탄 : 몹시 놀라며 감탄함.
* 부호 : 일정한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따로 정하여 쓰는 기호.
* 투사하다 : (1)창이나 포탄 따위를 내던지거나 쏘다. (2)하나의 매질(媒質) 속을 지나가는 소리나 빛의 파동이 다른 매질의 경계면에 이르다. (3)자신의 성격, 감정, 행동 따위를 스스로 납득할 수 없거나 만족할 수 없는 욕구를 가지고 있을 경우에 그것을 다른 것의 탓으로 돌림으로써 자신은 그렇지 아니하다고 생각하다. 자신을 정당화하는 무의식적인 마음의 작용을 이른다.
* 에피파니 : 순간적인 직관, 통찰. 신적 존재의 출현.
* 자가당착 : 같은 사람의 말이나 행동이 앞뒤가 서로 맞지 아니하고 모순됨.
* 위무하다 : 위로하고 어루만져 달래다.
* 만곡하다 : 활 모양으로 굽다.
* 병용하다 : 어울러 같이 쓰다.
* 어표 : 경골어류의 몸속에 있는, 엷은 막으로 된 공기 주머니. 뜨고 가라앉는 것을 조절하는 것 외에 종류에 따라 청각이나 평형 감각 기관의 역할을 하며, 발음, 호흡 따위의 작용과도 연관을 가지고 있다.
* 조음하다 : 말소리의 산출에 관여하는 발음 기관 즉, 성대, 목젖, 혀, 이, 입술 따위를 움직이다.
* 구승 : 말로 이어져 내려옴. 또는 말로 이어 나감.
* 일거에 : 지체 없이 그 자리에서 곧바로.
25p. <바빌론의 탑>
꼭대기에 올라갈 때마다 그 수레는 다시 제일 아래층까지 내려와야 해. 난 도저히 그럴 수 없을 거야.
27p. <바빌론의 탑>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는 밤의 정체를 깨달았던 것이다. 밤이란 하늘을 향해 드리우는 대지의 그림자였다.
29-30p. <바빌론의 탑>
탑을 오르던 어느 날, 광부들은 경사로 가장자리에서 보면 위를 올려다보든 아래를 내려다보든 탑이 똑같이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탑의 원주는 바늘 끝처럼 점점 가늘어지다가 아래쪽의 평원에 도달하기도 전에 사라져버렸다. 마찬가지로 위를 바라보아도 아직 탑의 정상은 보이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탑 중간의 일부뿐이었다. 올려다보거나 내려다보는 행위는 이제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연속성이 주는 안심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더 이상 지상의 일부가 아니었다. 탑은 대지에도 하늘에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허공에 든 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50p. <바빌론의 탑>
어떤 이유에선가 하늘의 천장은 대지 아래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 두 장소는 머릴 떨어져 있으면서도 마치 서로 맞닿아 있는 듯했다.
51p. <바빌론의 탑>
이제는 왜 야훼가 탑을 무너뜨리지 않았는지, 정해진 경계 너머로 손을 뻗치고 싶어하는 인간들에게 왜 벌을 내리지 않았는지 뚜렷이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오랫동안 여행을 해도 인간은 결국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51p. <바빌론의 탑>
몇십 세기에 걸쳐 역사한다고 해도 인간은 천지창조에 관해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지식 이상의 것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런 노력을 통해, 인간은 야훼의 업적에 깃든 상상을 초월한 예술성을 일별하고, 이 세계가 얼마나 절묘하게 건설되었는지 깨달을 수 있다. 이 세계를 통해 야훼의 업적은 밝혀지고, 그와 동시에 숨겨지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인간은 자신의 위치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65p. <이해>
지능에는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정점이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호르몬의 추가 주입에 의해 추가 증대할 수 있는 것일까?
79p. <이해>
게슈탈트들이 나를 부르고 있다.
79p. <이해>
사고력이 발달하자 내 몸을 제어하는 능력도 함께 발달한다. 진화를 거치면서 인류가 지능을 발달시키는 대신 육체적인 능력을 희생했다는 생각은 오해이다. 육체를 행사하는 것은 정신적 활동이다. 힘 자체는 강해지진 않았지만, 내 육체를 다루는 조정력은 이제 평균을 훨씬 뛰어넘은 상태이며 양손잡이가 되어가고 있을 정도이다. 게다가 정신 집중 능력이 뛰어난 덕분에 바이오피드백 테크닉을 극히 효과적으로 쓸 수 있다. 약간의 연습만으로도 나는 맥박수나 혈압을 자유자재로 낮추거나 올릴 수 있게 되었다.
89p. <이해>
네 번째 앰플을 쓰면 어떨까? 머리에서 이런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다. 현재 내가 도달한 정상에서 좌절을 경험할 때마다, 나는 더 높은 곳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곱씹는다.
90p. <이해>
나의 뇌는 불타오르고 있고, 등골 전체가 도화선처럼 타오른다. 당장이라도 뇌졸중을 일으킬 것 같다. 눈이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으며 아무런 감각도 느낄 수 없다.
환각을 본다. 초자연적일 정도로 선명하고 뚜렷한 환각은 망상의 산물이겠지만, 형언할 수 없는 공포가 내 주위를 에워싼다. 물리적인 폭력이 아닌 정신적인 훼손의 이미지들. 정신적 고뇌와 오르가슴. 전율과 히스테리컬한 웃음.
91p. <이해>
말이 있으라Fiat Logos. 나는 내가 과거에 상상했던 그 어떤 것보다 더 풍부한 표현력을 가진 언어를 통해 나의 마음을 안다. 말을 함으로써 혼돈에서 질서를 창조하는 신처럼, 나는 이 언어를 써서 나를 새롭게 바꾼다. 이것은 메타 자기 기술이며 자기 편집이다. 이 언어는 사고를 기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작용을 모든 레벨에서 기술하고 수정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의 서술을 수정하면 문법 전체의 조정이 야기되는 언어가 있다는 사실을 괴델이 알았다면 뭐라고 했을까.
111p. <이해>
그가 이 말을 하자 내가 재구성한 그의 모델에 존재하는 틈새 하나가 채워지고 넘친다. 그것이 암시하는 바는 내가 그에 관해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물들인다. 그가 의미하는 것은 '말'이다. 입 밖으로 내면 듣는 사람의 마음을 파괴하게 되는 문장. 레이놀즈는 이 신화가 사실이며, 모든 마음에는 본래 그런 방아쇠가 내장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개인에게는, 단지 들려주기만 해도 그를 백치로, 광인으로, 긴장병 환자로 몰아넣을 수 있는 문장이 하나씩 있다고. 그리고 그는 나의 문장도 알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128p. <영으로 나누면>
칼은 르네의 얼굴에 매료당했다. 대단히 평이한데다가 언제나 우울한 표정인 듯 했지만, 파티에서 그는 그녀가 미소 짓는 것을 두 번, 찡그리는 것을 한 번 보았다. 그때마다 르네의 이목구비 전체가 마치 다른 표정은 아예 모른다는 듯 완전히 돌변하는 것을 보고 칼은 깜짝 놀랐다. 평소에 자주 미소 짓거나 자주 찌푸리는 얼굴이라면 설령 주름이 없다고 해도 금세 알아볼 수 있는 법이다. 저토록 깊이 있는 표정을 지을 수 있으면서 왜 평소에는 그것을 전혀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일까.
130p. <영으로 나누면>
르네라면 '궁금하다'라는 말보다 훨씬 더 강한 표현을 썼을 것이다.
134p. <영으로 나누면>
형식 체계로서의 수론은 모순이야.
137p. <영으로 나누면>
그리고 그녀는 생과 사가 동일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37p. <영으로 나누면>
그러나 그것은 아름답고, 장엄하며, 르네가 지금까지 본 정리 중에서도 가장 정묘한 것이었다.
140p. <영으로 나누면>
1과 2가 등가라고 계측하는 것과 그것을 직관하는 것은 전혀 달라. 난 더 이상 마음속에 뚜렷한 양量의 개념을 유지할 수가 없어. 모든 게 똑같이 느껴지거든.
141p. <영으로 나누면>
힐베르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만약 수학적 사고에 결함이 있다면 우리는 진실과 확신을 도대체 어디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142p. <영으로 나누면>
지금껏 르네는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수학은 우주에서 그 의미를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우주에 대해 모종의 의미를 부여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리적인 존재에 대소나 유사함의 구분은 없다. 그것들은 단지 그곳에 있고 존재할 뿐이다. 수학은 이런 것들로부터 완전히 독립해 있지만 실질적으로 이런 존재들에 대해 범주나 관계를 제공하며 기호론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수학이 표현하는 것은 고유한 성질이 아니라 가능한 하나의 해석인 것이다.
143p. <영으로 나누면>
그러나 이것은 더 이상 사실이 아니었다. 수학은 일단 물리적 존재들로부터 유리된 뒤에는 모순을 내포하게 되고, 형식적 이론은 모순 그 자체였다. 수학은 경험적인 것 이상의 그 어떤 것도 아니었고 더 이상 그녀의 흥미를 끌지 않았다.
143p. <영으로 나누면>
그에겐 도대체 어떤 장점이 있기에 마를린과 그토록 친해질 수 있었는지 궁금해했다는 사실을 칼은 알고 있었다. 대답은 가단했다. 그것은 동정과 감정이입의 차이였다.
160p. <당신 인생의 이야기>
눈꺼풀이 없는 일곱 개의 눈이 헵타포드의 몸통 꼭대기를 둘러싸고 있었다. 헵타포드는 방금 들어온 입구를 향해 돌아가더니 짧게 풋 풋 소리를 냈고, 다른 헵타포드를 대동하고 다시 방 중앙으로 되돌아왔다. 그러면서도 한 번도 몸의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 기괴하면서도 논리적이었다. 모든 방향으로 눈이 있으므로, 헵타포드에게는 어느 방향도 '전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174p. <당신 인생의 이야기>
"몸이 방사상 대칭이기 때문에 생겨난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몸에 '전방'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글자 역시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겠어요. 고도로 근사한 방식이로군."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함께 일하는 동료가 '근사하다'라는 말을 '고도로'라는 말로 수식하는 사람이었다니.
175p. <당신 인생의 이야기>
익숙한 쪽은 멀리 떨어져 있는 데 비해, 낯선 쪽은 지척에 있었다.
177p. <당신 인생의 이야기>
그때 내 머릿속에 떠오르게 될 생각. 너는 명백하게, 기가 막힐 정도로 나와는 다르다는 사실. 이 생각은 네가 나의 복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내게 또다시 일깨워줄 거야. 너는 매일처럼 내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소중한 존재이지만, 나 혼자 만들어낼 수 있었던 존재는 결코 아니야.
183p. <당신 인생의 이야기>
네 졸업식을 기억해. 넬슨과 네 아버지와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그 젊은 여자가 모두 와 있는 탓에 조금 산만할 테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 주말 내내 너는 나를 네 학교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쉴새 없이 끌어안지. 너의 모습이 너무 놀라운 탓에 나는 말이 제대로 안 나오는 지경이야. 나보다 키도 크고, 가슴이 아릴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가 된 네가, 분수식 식수대에서 물을 마실 수 있도록 들어올려주곤 했던 어린 소녀, 내 옷장에서 꺼낸 드레스와 모자와 네 장의 스카프를 몸에 두르고 내 침실에서 구르듯이 달려나오곤 했던 어린 소녀와 같은 아이라니.
193p. <당신 인생의 이야기>
우리 관계가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사실을 내가 매일 자각하게 되는 것은 네가 처음 걷기 연습을 하면서부터야. 너는 쉬지 않고 어딘가로 달려나가겠지. 네가 문지방에 부딪치거나 무릎이 까질 때마다 나는 너의 아픔을 내 것처럼 느끼게 돼. 마치 말을 안 듣고 멋대로 행동하는 팔이나 다리가 하나 더 생긴 듯한 느낌이지. 내 몸의 연장이니까 지각 신경이 느끼는 아픔은 고스란히 나한테 전달되지만, 운동신경은 전혀 내 명령에 따르지 않는 꼴이야. 정말 불공평해. 나의 본을 떠 빚은 움직이는 부두 인형을 낳은 기분이랄까. 계약서에 서명할 땐 이런 조항을 읽은 기억이 없어. 이것도 계약의 일부였단 말이야?
193p. <당신 인생의 이야기>
반대로 네가 웃는 것을 볼 때도 있겠지. 이를테면 쇠그물 울타리 사이로 손을 집어넣고 이웃집 강아지와 놀 때. 어찌나 웃어대는지 너는 급기야 딸꾹질을 하기 시작하지. 강아지가 옆집 안으로 들어가면 너의 웃음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너는 그제야 숨을 제대로 쉬기 시작해. 그러다 강아지가 다시 밖으로 나와서 네 손가락을 핥고, 그럼 너는 또 꽥 소리를 지르고 웃기 시작할 거야. 그 소리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소리이지. 내가 분수나 샘이라도 된 듯한 기분으로 만들어주는 소리란다.
202p. <당신 인생의 이야기>
글쓰기 실력이 향상되고 있다는 사실도 나를 들뜨게 만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쓰는 문장들은 점점 더 모양이 좋아지고 더 면밀해졌다. 너무 깊이 생각하지만 않으면 오히려 매끄럽게 쓸 수 있는 수준에까지 도달했다. 문자를 쓰기 전 신중하게 생각해 구도를 결정하는 대신, 즉각적으로 획을 긋는 것이 가능해졌던 것이다. 내가 처음에 긋는 선들은 내가 전달하려는 내용의 명쾌한 해석에 거의 언제나 들어맞는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203p. <당신 인생의 이야기>
더 흥미로운 점은 '헵타포드 B'가 내가 생각하는 방식을 바꿔놓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에게 지금까지 사고란 보통 마음속 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의미했다. 전문 용어를 쓰자면 나의 사고는 음운적으로 코드화되어 있었다. (...) 사고란 마음속으로 소리 없이 말하는 과정이었다.
203p. <당신 인생의 이야기>
언어적이지만 비음운적인 방식으로 사고한다는 개념은 언제나 나를 매료했다. (...) 나의 사고가 도형의 형태로 코드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낮에는 이따금 꿈을 꾸는 듯한 상태에 빠져, 나의 사고가 마음속 목소리로 표현되는 대신, 유리창에 서리가 끼듯이 생겨나는 어의문자로 대체되는 광경을 마음속 눈으로 보곤 했다.
203-204p. <당신 인생의 이야기>
내가 이 언어를 점점 더 유창하게 다룰 수 있게 되면서 이 의미표시 형태들은 완성된 형태로 나타났고, 나는 복잡한 개념들까지로 일거에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결과 나의 사고 과정이 예전보다 빨라지게 된 것은 아니었다. 앞을 향해 질주하는 대신, 나의 마음은 어의 문자들의 기반을 이루는 대칭성 위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부유하고 있었다. 어의문자들은 단순한 언어를 넘어선 무언가처럼 보였다. 거의 만다라에 가까웠다. 나도 모르게 명상 상태에 빠져 전제조건과 결론을 호환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해 숙고하고 있다는 사실을 퍼뜩 깨달을 때도 있었다. 각 명제들 사이의 관계에 고유한 방향성은 없었고, 특정 경로를 따라 움직이는 '사고의 맥락'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사유에 관여된 모든 요소의 힘은 동등했고, 모두가 동일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212p. <당신 인생의 이야기>
사실 한 가정 안에서 이 두 언술이 공존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쪽 모두 타당한 해석이다. 문맥이 이 문장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결정할 뿐이다.
213p. <당신 인생의 이야기>
인류와 햅타포드의 조상들이 맨 처음 자의식의 불꽃을 획득했을 때 양측은 모두 동일한 물질세계를 지각했다. 하지만 지각한 것에 대한 해석은 각자 달랐다. 세계관의 궁극적인 상이함은 이런 차이가 낳은 결과였다. 인류가 순차적인 의식 양태를 발달시킨 데 비해, 헵타포드는 동시적인 의식 양태를 발달시켰다. 우리는 사거들을 순서대로 경험하고, 원인과 결과로 그것들 사이의 관계를 지각한다. 헵타포드는 모든 사건을 한꺼번에 경험하고, 그 근원에 깔린 하나의 목적을 지각한다. 최소화, 최대화라는 목적을.
217p. <당신 인생의 이야기>
일단 울기 시작하면 너는 분노의 화신이 되고, 온몸으로 그 감정을 표현하지. 재미있는 건 네가 조용하게 있을 때는 몸에서 빛을 발산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야. 만약 누군가가 그런 상태의 너를 보고 초상화를 그린다면, 나는 그 그림에 후광을 포함시키라고 주장하겠지. 그렇지만 불쾌함을 느낄 때 너는 큰 소리를 발산하기 위해 만들어진 클랙슨이 되어버려. 그런 너를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화재경보기로 족할 거야.
217p. <당신 인생의 이야기>
네 인생의 이 단계에서 네게는 과거도 미래도 없어. 내가 너에게 젖을 먹이기 전까지 네 안에는 과거의 만족감에 관한 기억도, 미래의 충족에 대한 기대감도 존재하지 않아. 그러다 젖을 빨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역전되겠지. 너는 세상에 대해 아무런 불만도 느끼지 않게 돼. 네가 지각하는 유일한 순간은 오로지 지금뿐이야. 너는 현재 시제 속에서만 살아. 여러 의미에서 실로 부러운 상태라고 할 수 있지.
228p. <당신 인생의 이야기>
나는 손가락으로 너의 배를 훑으며 깜짝 놀랄 정도로 부드러운 살갗의 감촉에 감탄할 거야. 살이 이렇게 부드럽다면 설령 비단옷을 입힌다 해도 거친 삼베 천에 스친 것처럼 상처가 나지 않을까 싶을 정도야. 그러면 너는 꿈틀거리고, 몸을 비틀면서 양쪽 다리를 하나씩 내밀어. 나는 그것이 네가 내 뱃속에 있을 때 여러 번 했던 몸짓이라는 것을 깨닫겠지. 아, 바로 저런 식이었군.
나는 어머니와 자식 사이에 존재하는 유일무이한 유대 관계의 증거, 네가 내 뱃속에 있던 자식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고양감을 느껴. 설령 너의 모습을 직접 본 일이 없다고 해도, 나는 수많은 갓난아이들 사이에서도 단번에 너를 찾아낼 수 있을 거야. 저쪽은 아녜요. 아, 쟤도 아닙니다. 잠깐, 저기 저애예요. 예, 그 아이가 맞아요. 제 딸입니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서 얻어 꼭 써보고픈 표현과 단어
* 홉뜨다 : 눈알을 위로 굴리고 눈시울을 위로 치뜨다.
* 경구 : 진리나 삶에 대한 느낌이나 사상을 간결하고 날카롭게 표현한 말.
* 종래 : 일정한 시점을 기준으로 이전부터 지금까지에 이름. 또는 그런 동안.
* 조야하다 : (1)천하고 상스럽다. (2)물건 따위가 거칠고 막되다.
* 축차적 : 차례를 따라 하는 것.
* 부트스트랩 : 컴퓨터의 전원을 켜거나 리셋 키를 누르는 따위의 동작으로 시스템을 시동하는 일.
* 타래째 : 사리어 뭉쳐 놓은 실이나 노끈 따위의 뭉치. 또는 그런 모양으로 된 것.
* 도화선 : (1)폭약이 터지도록 불을 붙이는 심지. (2)사건이 일어나게 된 직접적인 원인.
* 외삽 : 보간의 두 값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두 점을 포함하는 범위의 바깥에 있는 값을 구하기 위하여 구간 밖에서 함수를 추정하는 일.
* 연후 : 그런 뒤.
* 양태 : 사물이 존재하는 모양이나 형편.
* 결락 : 있어야 할 부분이 빠져서 떨어져 나감.
* 길항 : 서로 버티어 대항함.
* 노정 : (1)적지까지의 거리. 또는 목적지까지 걸리는 시간. (2)거쳐 지나가는 길이나 과정. (3)겉으로 다 드러내어 보임.
* 연역 : 어떤 명제로부터 추론 규칙에 따라 결론을 이끌어 냄. 또는 그런 과정. 일반적인 사실이나 원리를 전제로 하여 개별적인 사실이나 보다 특수한 다른 원리를 이끌어 내는 추리를 이른다.
* 경탄 : 몹시 놀라며 감탄함.
* 부호 : 일정한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따로 정하여 쓰는 기호.
* 투사하다 : (1)창이나 포탄 따위를 내던지거나 쏘다. (2)하나의 매질(媒質) 속을 지나가는 소리나 빛의 파동이 다른 매질의 경계면에 이르다. (3)자신의 성격, 감정, 행동 따위를 스스로 납득할 수 없거나 만족할 수 없는 욕구를 가지고 있을 경우에 그것을 다른 것의 탓으로 돌림으로써 자신은 그렇지 아니하다고 생각하다. 자신을 정당화하는 무의식적인 마음의 작용을 이른다.
* 에피파니 : 순간적인 직관, 통찰. 신적 존재의 출현.
* 자가당착 : 같은 사람의 말이나 행동이 앞뒤가 서로 맞지 아니하고 모순됨.
* 위무하다 : 위로하고 어루만져 달래다.
* 만곡하다 : 활 모양으로 굽다.
* 병용하다 : 어울러 같이 쓰다.
* 어표 : 경골어류의 몸속에 있는, 엷은 막으로 된 공기 주머니. 뜨고 가라앉는 것을 조절하는 것 외에 종류에 따라 청각이나 평형 감각 기관의 역할을 하며, 발음, 호흡 따위의 작용과도 연관을 가지고 있다.
* 조음하다 : 말소리의 산출에 관여하는 발음 기관 즉, 성대, 목젖, 혀, 이, 입술 따위를 움직이다.
* 구승 : 말로 이어져 내려옴. 또는 말로 이어 나감.
* 일거에 : 지체 없이 그 자리에서 곧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