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양귀자> 모순 中, 모순적인 우리네 인생에서 펼쳐지는 문장들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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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p.

삶에서 발생하는 에피소드들에 대해서 사람들은 씹을 줄만 알았지 즐기는 법은 전혀 배우지 못한 것이었다.


29p.

이모가 영원 혹은 간직이라는 단어를 스스럼없이 사용하는 쪽이라면 엄마는 이익 혹은 계산이라는 말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거침없이 해대는 쪽이었다.


53p.

사랑이라 말하지 않고 연애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나는 천박하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74p.

계획 짜는 일이 정말 재미있어요. 시간이 내 계획대로 흘러간다고 생각하면 시간을 장악한다는 느낌도 괜찮고요.


94p.

하늘이 저 켠부터 푸른색으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프거든.


94p.

환한 낮이 가고 어둔 밤이 오는 그 중간 시간에 하늘을 떠도는 쌉싸름한 냄새를 혹시 맡아본 적 있니?


152p.

어머니는 '살인'만 인정하고 '미수'는 무시해버렸다. 내가 '살인'은 무시하고 '미수'만 인정한 것과는 정반대였다.


152p.

소소한 불행과 대항하여 싸우는 일보다 거대한 불행 앞에서 무릎을 꿇는 일이 훨씬 견디기 쉽다는 것을 어머니는 이미 체득하고 있었다.


171p.

쇼핑의 피곤함이 삶에서 겪어야 했던 가장 큰 피로였을 그 애의 작고 연약한 발가락과 분홍색으로 물든 동그란 발뒤꿈치


217.

스물다섯 이전의 졸렬했던 내 인생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지금부터라도 주어진 내 삶에 전력투구하고 싶다는 그 가상한 각오


227p.

이모는 그런 사람이었다. 미안하면 금방 얼굴이 붉어지고, 슬프면 금방 눈물이 고이는 사람. 이모에게는 모든 감정이 다 진실이었다.


229p.

인간만큼 다양한 변주를 허락하는 주제가 또 어디 있으랴.


246p.

얻고 싶은 것은 모두 눈물로 얻어내며 짧은 세상 살아온 이력이 저절로 보였다. 저런 애 앞에서 냉정하기란 몹시 힘들겠구나, 나는 생각했다.


248p.

숨겨놓은 치부를 고백하고 있는 마당에도 자신도 모르게 육성 대신 가성을 사용하고 있는 진모. 무엇이 육성이고 무엇이 가성인지 분별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면 분별을 할 필요가 어디 있으랴. 이제는 그렇게 사는 일만 남은 것이었다.


257p.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건은 언제나 돌발적으로 일어난다. 이런 일이 현실로 드러날 줄은 알았지만, 그 일이 '오늘이나 내일' 일어난다고는 믿지 않는다. 예감 속에 오늘이나 내일은 없다. 오직 '언젠가'만 있을 뿐이다. 매일매일이 오늘이거나 혹은 내일인데.


268p.

자기에게 나쁜 소식은 이런 식으로 막아내면 되는구나. 나는 정녕 모르고 있었던 삶의 기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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