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르 | 교양과학, 논픽션
작가 | 룰루 밀러
번역 | 정지인
출판사 | 곰출판
2022년, 이 책이 입소문을 타고 기어코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때, 나는 한창 못다 읽은 SF 소설책을 잔뜩 쌓아두고 있었다. 매일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소설책만 생각했다. 그 당시 꽂혔던 책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그 즈음의 (당장 읽고 싶은) 간절함과 두근거림을 더듬어 보면 김보영 작가의 책에 한창 빠져있을 때가 아니었나 싶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특히 인스타그램에서 난리였다. 책을 추천하는 글이 알고리즘을 탔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도 책 좋다는 글을 올리곤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무도 장르나 줄거리 설명을 제대로 안 해주고 “그냥 읽어보세요.”, “아니 진짜 좋아~” 정도의 두루뭉술한 추천사 한 마디만 다는 것이다.
모두가 입을 모아 올해 최고의 책이라는데 일단 사긴 사야지. 그런데 막상 시작하니 진도가 제대로 나가지 않았다. 잠깐 ‘열역학 제2법칙’ 따위의 단어가 지나가듯 등장하면 내 머릿속은 김보영의 우주로 가득 차고 마는 것이다. 역학, 과학… SF 소설 읽어야 하는데, 다음 단편 제목 재밌어 보였는데… 우주로 가득했던 그때 그 잡념은, 자기 전 무심코 첫 화를 클릭한 웹툰을 눈을 벌겋게 떠가며 중독되어 읽던 그 몰입과 닮았던 것 같다. 논픽션을 읽기 위한 차분함에 내어줄 여유가 없었다.
여러 감정과 현실에 대한 걱정으로 똘똘 뭉쳐버린 시기, 폭우와 폭염이 하루 걸러 찾아오던 여름의 일요일, 나는 오랜만에 이 책을 다시 집어 들고 열렬히 빠져들고 말았다. 그래, 이거였구나. 사람들이 좋다고 하던 내용들. 인프피인 모순에게 선물하기 위해 주변 INFP들에게 자문 받아 ‘가장 인생에 영향을 끼친 책’을 골랐다는 하영팟의 코멘트가.

⚠️ 스포에 유의하세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줄거리
화자는 작가인 룰루 밀러로, 과학 저널 전문 기자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자살 충동이 일었던 순간들, 잠깐의 선택과 실수로 인해 힘들었던 시기, 인생에 닥쳐오는 혼돈을 해결하고 싶었다. 문득 저명한 생물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일화를 기억해 내고, 그를 우상으로 삼아 전 인생의 발자취를 더듬어가면서 정답을 찾고 철학하며 교훈을 얻는다.
때문에 책의 반절 정도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인물에 대한 전기(傳記) 비슷한 형식이 진행된다. 본문은 총 13 챕터로 이루어져 있는데, 대략 6 챕터까지가 거의 인물에 대한 일대기다. (그래서 초반이 지루하더라도 참고 끝까지 읽어보라는 평이 많다.) 이 인물의 인생을 소개하는 과정은 본 책에서 꽤 많이 중요한 부분이다. 역시나 조금 재미없게 느껴지더라도 꼭 참고 읽어보라는 말밖에 해줄 수 없다.
작은 사과 과수원 출신. 그의 ‘분류에 대한 열망’은 밤하늘의 별과 마을의 지도, 집 근처 식물을 동정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특히 숨어 있는 보잘것없는 것들에 대한 관심. 하지만 불운하게도 데이비드가 태어난 지역에서는 아무도 그의 능력을 빛내주지 못했고, 그 후로도 이어진 따분할 정도로 평이하던 인생에 ‘루이 아가시’라는 스승이 빛처럼 찾아온다. 루이 아가시, 그리고 동료 박물학자들과 페니키스 섬에서 여러 철학과 생물학을 깨우친 이 캠프는 데이비드 인생의 방향을 크게 튼다. 특히 바다의 물고기를 처음 만나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스승으로부터 진지하게 어류 수집을 권유받았던 그의 분류는 훗날, 현대에 밝혀진 어류의 5분의 1 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꾸준하고 오랫동안 이어진다.
하지만 인생은 쉽게 흘러가지 않으며 혼돈으로 가득한 법. 30년을 쏟아부은 연구가 화재나 7.9 지진으로 대부분 소실되기도 한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다시 한번 도전하고 또 도전한다. 룰루 밀러는 그가 혼돈을 해결하는 방법에 감탄하고 인생을 헤쳐나가는 방법을 배워나간다. 심리적인 철학과 고찰도 해본다. 이는 학자들이 실제 남긴 기록에서 발췌하거나, 화자가 직접 전문가들에게 자문 받은 내용과 함께 등장한다. 이를테면 높은 자존감이나 자기고양이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 이런 것들. 그렇게 행적을 좇던 어느 순간, 그가 모종의 죽음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을 담은 한 사건을 만나게 된다. ‘설마, 내 우상이 사람을 죽였다고?’ 아무리 조사를 해도, 아무리 존경하는 사람이라도, 화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의 행동 때문에 혼란에 빠진다. 다양한 증거 자료와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그 이후의 행적을 조사하던 룰루 밀러는 더 충격적인 내용을 발굴하게 된다.
우리 모두가 잔혹한 역사로 기억하는 나치, 유대인을 죄인이라 낙인찍고 무차별한 학살을 진행했던 그 비인간적 행위. 그보다도 먼저 ‘우생학(우월한 유전자만 ‘선별하여' 유전자의 질을 개선하고 인간을 우수한 종으로 만들고자 한 계획)’이라는 궤변을 국가 정책으로 수립하는데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큰 공을 세웠던 것. 그는 ‘적합’과 ‘부적합’ 인간으로 분류하여 부적합 인간들의 생식 능력을 공권력을 앞세워 제거했다. 룰루 밀러는 인생의 롤 모델로 삼았던 인물에서 결국 구역질을 느끼게 된다. 현대 생물학에 엄청난 도움을 준 저명한 분류학자이지만 한편으로는 유전과 종의 분류에 몰두해 잘못된 길을 걸었던 데이비드의 가치를, 자연은 조용히 심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몰랐겠지만 1980년에 이미 ‘어류’라는 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간이 편의상 물 아래 생물들을 싸잡아 ‘어류’로 분류했을 뿐이라는 진실이 밝혀졌다. 예를 들면 박쥐는 낙타와 더 가깝고, 고래는 유제류(ex. 사슴)다. 새들은 공룡이며(따라서 공룡은 아직 멸종하지 않았다!), 버섯은 식물보단 동물에 더 가깝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고착된 생물이라며 게으름의 상징으로 여겼던 멍게는, 척추와 비슷한 구조물을 가장 먼저 겪어 오히려 현재 가장 혁신한 상태다. 비늘과 피부의 차이에 현혹되지 않고 내피를 분석해 보니 ‘어류’로 통칭했던 ‘물고기’들은 오히려 육지의 생물들과 연관이 많았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 깨닫는 순간 평생을 생물에 ‘급’을 매기며, 물고기 수집과 분류에 남다른 애정을 쏟았던 데이비드의 노력에 헛수고라는 가치가 덧씌워진다. 그야말로 자연의 통쾌한 반박이 아닐 수 없다.
어려서부터 여러 생물을 분류하고 자연재해로 연구를 망쳐도 손을 놓지 않았던 생물학자 데이비드. 생물학의 사다리를 잘못 받아들여 인간은 가장 꼭대기에 있어야 한다는 오만을 가졌던 데이비드. 심지어 인간에도 우수한 종과 열등한 종이 있어, 우수한 유전자만 남겨야 주장했던 데이비드. 기어코 ‘우생학’을 국가 정책으로 세워 ‘부적합’ 인간을 마음대로 불임화 시켰던 데이비드. 말년에는 결국 ‘우수한 종을 해치는 전쟁은 없어져야 합니다!’를 외치며 모순적인 평화주의를 펼쳤던 데이비드. "숨어 있는 보잘것없는" 것들에 몰두하고 관심을 기울이던 그 상냥했던 소년은, 바로 그 숨어 있는 보잘것없는 존재들을 기꺼이 말살하려는 남자가 되었다.
책은… 뭐랄까, 논문 같은 느낌이다. 온갖 자료들이 증거처럼 등장한다. 오버 좀 보태서 매 문단마다. 오랜 경력을 가진 과학 전문 기자는 이렇게 조사하는구나. [감사의 말] 이후에 달린 주석은 룰루 밀러가 얼마나 많은 자료를 참고했는지 보여준다. 분명 어마어마하게 시간을 들여서 정리한 내용일 테다.
내가 주로 읽고 좋아하는 소설책들은 항상 어떤 세계관이나 메인이 되는 이야기, 주인공과 동료들의 모험담 등을 담고 있어서 ‘야아 이거 정말 재밌어! 자기 전에 꼭 읽어봐! 하여튼 어쩌고 저쩌고 해서 세상이 이렇게 저렇게 된 이야기야~’라며 간단한 설명과 함께 추천할 수 있었는데 이 책은 쉬이 설명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래도 정보 없이 읽어보는 것이 최고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향한 찬사들이 허공에서 흩어지는 것이 아까워 이렇게 길게 줄거리를 남겨놓아본다.
책을 읽으며 ‘나도 저렇게 쓰고 싶다', ‘두루뭉술하게 둥둥 떠다니는 생각을 어떻게 이렇게 글로 표현하지.’ 싶은 문장들은 Collection 탭에 최대한 수집하려고 한다. 소설책에서는 주로 표현이 가득한 문장을 수집했는데, 이렇게 다양한 철학과 탄사가 담긴 문장 수집은 또 처음이었던 것 같다. 모순과 혼란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내면의 파괴되지 않는 무언가를 지키고자. 모순이 수집한 문장을 들춰보고 싶다면 이곳에서.
장르 | 교양과학, 논픽션
작가 | 룰루 밀러
번역 | 정지인
출판사 | 곰출판
2022년, 이 책이 입소문을 타고 기어코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때, 나는 한창 못다 읽은 SF 소설책을 잔뜩 쌓아두고 있었다. 매일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소설책만 생각했다. 그 당시 꽂혔던 책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그 즈음의 (당장 읽고 싶은) 간절함과 두근거림을 더듬어 보면 김보영 작가의 책에 한창 빠져있을 때가 아니었나 싶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특히 인스타그램에서 난리였다. 책을 추천하는 글이 알고리즘을 탔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도 책 좋다는 글을 올리곤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무도 장르나 줄거리 설명을 제대로 안 해주고 “그냥 읽어보세요.”, “아니 진짜 좋아~” 정도의 두루뭉술한 추천사 한 마디만 다는 것이다.
모두가 입을 모아 올해 최고의 책이라는데 일단 사긴 사야지. 그런데 막상 시작하니 진도가 제대로 나가지 않았다. 잠깐 ‘열역학 제2법칙’ 따위의 단어가 지나가듯 등장하면 내 머릿속은 김보영의 우주로 가득 차고 마는 것이다. 역학, 과학… SF 소설 읽어야 하는데, 다음 단편 제목 재밌어 보였는데… 우주로 가득했던 그때 그 잡념은, 자기 전 무심코 첫 화를 클릭한 웹툰을 눈을 벌겋게 떠가며 중독되어 읽던 그 몰입과 닮았던 것 같다. 논픽션을 읽기 위한 차분함에 내어줄 여유가 없었다.
여러 감정과 현실에 대한 걱정으로 똘똘 뭉쳐버린 시기, 폭우와 폭염이 하루 걸러 찾아오던 여름의 일요일, 나는 오랜만에 이 책을 다시 집어 들고 열렬히 빠져들고 말았다. 그래, 이거였구나. 사람들이 좋다고 하던 내용들. 인프피인 모순에게 선물하기 위해 주변 INFP들에게 자문 받아 ‘가장 인생에 영향을 끼친 책’을 골랐다는 하영팟의 코멘트가.
⚠️ 스포에 유의하세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줄거리
화자는 작가인 룰루 밀러로, 과학 저널 전문 기자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자살 충동이 일었던 순간들, 잠깐의 선택과 실수로 인해 힘들었던 시기, 인생에 닥쳐오는 혼돈을 해결하고 싶었다. 문득 저명한 생물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일화를 기억해 내고, 그를 우상으로 삼아 전 인생의 발자취를 더듬어가면서 정답을 찾고 철학하며 교훈을 얻는다.
때문에 책의 반절 정도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인물에 대한 전기(傳記) 비슷한 형식이 진행된다. 본문은 총 13 챕터로 이루어져 있는데, 대략 6 챕터까지가 거의 인물에 대한 일대기다. (그래서 초반이 지루하더라도 참고 끝까지 읽어보라는 평이 많다.) 이 인물의 인생을 소개하는 과정은 본 책에서 꽤 많이 중요한 부분이다. 역시나 조금 재미없게 느껴지더라도 꼭 참고 읽어보라는 말밖에 해줄 수 없다.
작은 사과 과수원 출신. 그의 ‘분류에 대한 열망’은 밤하늘의 별과 마을의 지도, 집 근처 식물을 동정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특히 숨어 있는 보잘것없는 것들에 대한 관심. 하지만 불운하게도 데이비드가 태어난 지역에서는 아무도 그의 능력을 빛내주지 못했고, 그 후로도 이어진 따분할 정도로 평이하던 인생에 ‘루이 아가시’라는 스승이 빛처럼 찾아온다. 루이 아가시, 그리고 동료 박물학자들과 페니키스 섬에서 여러 철학과 생물학을 깨우친 이 캠프는 데이비드 인생의 방향을 크게 튼다. 특히 바다의 물고기를 처음 만나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스승으로부터 진지하게 어류 수집을 권유받았던 그의 분류는 훗날, 현대에 밝혀진 어류의 5분의 1 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꾸준하고 오랫동안 이어진다.
하지만 인생은 쉽게 흘러가지 않으며 혼돈으로 가득한 법. 30년을 쏟아부은 연구가 화재나 7.9 지진으로 대부분 소실되기도 한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다시 한번 도전하고 또 도전한다. 룰루 밀러는 그가 혼돈을 해결하는 방법에 감탄하고 인생을 헤쳐나가는 방법을 배워나간다. 심리적인 철학과 고찰도 해본다. 이는 학자들이 실제 남긴 기록에서 발췌하거나, 화자가 직접 전문가들에게 자문 받은 내용과 함께 등장한다. 이를테면 높은 자존감이나 자기고양이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 이런 것들. 그렇게 행적을 좇던 어느 순간, 그가 모종의 죽음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을 담은 한 사건을 만나게 된다. ‘설마, 내 우상이 사람을 죽였다고?’ 아무리 조사를 해도, 아무리 존경하는 사람이라도, 화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의 행동 때문에 혼란에 빠진다. 다양한 증거 자료와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그 이후의 행적을 조사하던 룰루 밀러는 더 충격적인 내용을 발굴하게 된다.
우리 모두가 잔혹한 역사로 기억하는 나치, 유대인을 죄인이라 낙인찍고 무차별한 학살을 진행했던 그 비인간적 행위. 그보다도 먼저 ‘우생학(우월한 유전자만 ‘선별하여' 유전자의 질을 개선하고 인간을 우수한 종으로 만들고자 한 계획)’이라는 궤변을 국가 정책으로 수립하는데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큰 공을 세웠던 것. 그는 ‘적합’과 ‘부적합’ 인간으로 분류하여 부적합 인간들의 생식 능력을 공권력을 앞세워 제거했다. 룰루 밀러는 인생의 롤 모델로 삼았던 인물에서 결국 구역질을 느끼게 된다. 현대 생물학에 엄청난 도움을 준 저명한 분류학자이지만 한편으로는 유전과 종의 분류에 몰두해 잘못된 길을 걸었던 데이비드의 가치를, 자연은 조용히 심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몰랐겠지만 1980년에 이미 ‘어류’라는 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간이 편의상 물 아래 생물들을 싸잡아 ‘어류’로 분류했을 뿐이라는 진실이 밝혀졌다. 예를 들면 박쥐는 낙타와 더 가깝고, 고래는 유제류(ex. 사슴)다. 새들은 공룡이며(따라서 공룡은 아직 멸종하지 않았다!), 버섯은 식물보단 동물에 더 가깝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고착된 생물이라며 게으름의 상징으로 여겼던 멍게는, 척추와 비슷한 구조물을 가장 먼저 겪어 오히려 현재 가장 혁신한 상태다. 비늘과 피부의 차이에 현혹되지 않고 내피를 분석해 보니 ‘어류’로 통칭했던 ‘물고기’들은 오히려 육지의 생물들과 연관이 많았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 깨닫는 순간 평생을 생물에 ‘급’을 매기며, 물고기 수집과 분류에 남다른 애정을 쏟았던 데이비드의 노력에 헛수고라는 가치가 덧씌워진다. 그야말로 자연의 통쾌한 반박이 아닐 수 없다.
어려서부터 여러 생물을 분류하고 자연재해로 연구를 망쳐도 손을 놓지 않았던 생물학자 데이비드. 생물학의 사다리를 잘못 받아들여 인간은 가장 꼭대기에 있어야 한다는 오만을 가졌던 데이비드. 심지어 인간에도 우수한 종과 열등한 종이 있어, 우수한 유전자만 남겨야 주장했던 데이비드. 기어코 ‘우생학’을 국가 정책으로 세워 ‘부적합’ 인간을 마음대로 불임화 시켰던 데이비드. 말년에는 결국 ‘우수한 종을 해치는 전쟁은 없어져야 합니다!’를 외치며 모순적인 평화주의를 펼쳤던 데이비드. "숨어 있는 보잘것없는" 것들에 몰두하고 관심을 기울이던 그 상냥했던 소년은, 바로 그 숨어 있는 보잘것없는 존재들을 기꺼이 말살하려는 남자가 되었다.
책은… 뭐랄까, 논문 같은 느낌이다. 온갖 자료들이 증거처럼 등장한다. 오버 좀 보태서 매 문단마다. 오랜 경력을 가진 과학 전문 기자는 이렇게 조사하는구나. [감사의 말] 이후에 달린 주석은 룰루 밀러가 얼마나 많은 자료를 참고했는지 보여준다. 분명 어마어마하게 시간을 들여서 정리한 내용일 테다.
내가 주로 읽고 좋아하는 소설책들은 항상 어떤 세계관이나 메인이 되는 이야기, 주인공과 동료들의 모험담 등을 담고 있어서 ‘야아 이거 정말 재밌어! 자기 전에 꼭 읽어봐! 하여튼 어쩌고 저쩌고 해서 세상이 이렇게 저렇게 된 이야기야~’라며 간단한 설명과 함께 추천할 수 있었는데 이 책은 쉬이 설명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래도 정보 없이 읽어보는 것이 최고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향한 찬사들이 허공에서 흩어지는 것이 아까워 이렇게 길게 줄거리를 남겨놓아본다.
책을 읽으며 ‘나도 저렇게 쓰고 싶다', ‘두루뭉술하게 둥둥 떠다니는 생각을 어떻게 이렇게 글로 표현하지.’ 싶은 문장들은 Collection 탭에 최대한 수집하려고 한다. 소설책에서는 주로 표현이 가득한 문장을 수집했는데, 이렇게 다양한 철학과 탄사가 담긴 문장 수집은 또 처음이었던 것 같다. 모순과 혼란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내면의 파괴되지 않는 무언가를 지키고자. 모순이 수집한 문장을 들춰보고 싶다면 이곳에서.